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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좋은보험 나쁜보험 이상한보험"/보험금불지급

피보험자가 자필서명을 하지 않아 보험계약이 무효이므로 사망보험금을 못주겠다

by 변운연 2017. 11. 17.

제가 두 번째로 출간한 책 '좋은보험 나쁜보험 이상한보험회사'의 45면-52면 내용입니다.


박 모씨는 경기도 안산에 사는 50대 중반의 여자이다. 9년 전 어느 따스하던 봄날, 그녀는 점심을 먹고 회사 사무실로 돌아와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S생명의 설계사 두 명이 찾아와 보험가입을 권유하였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보험을 무척 싫어했던 터라 남편 앞으로 보험계약이 한 건도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오래 전부터 남편의 보험을 한 건 넣고 싶었었는데 마침 설계사가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설계사에게 말했다.

“저는 남편 앞으로 보험을 한 건 넣고 싶은데 우리 남편이 보험이라면 질색해요.”

“맞아요. 대부분의 남편들은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여 보험을 가입하면 재수가 없다느니, 기분이 나쁘다느니, 나 죽고 나면 누구 좋으라고 가입하느냐면서 많이 반대해요.”

“하지만, 사모님.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가입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긁어 부스럼을 만드세요?”

“그래도 남편에게 자필서명을 받으려면….”

“사모님이 남편의 서명을 대신 하여도 상관없어요.”

“정말 그래도 되요?”

“그럼요. 부부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이렇게 하여 그녀는 그날 남편의 종신보험을 한 건 체결하였다. 종신보험이란 종신토록 피보험자가 재해나 질병으로 죽으면 가입금액을 전액 사망보험금으로 지급하는 사망보험이다. 그녀가 청약서 작성을 끝내자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동료 여직원 한 명도 계약자를 자신으로 하고 피보험자를 남편으로 하여 같은 종신보험을 한 건 체결하였다. 계약자인 부인이 피보험자인 남편의 서명을 대신 하여도 괜찮다는 설계사의 말을 듣고 두 사람은 모두 남편의 서명을 자신들이 하였다.

 

보험을 가입하고 9년 동안은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지내던 그녀의 남편이 1개월 전 교통사고를 당하여 머리를 크게 다쳤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안산병원 중환자실에서 6일 동안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결국은 죽고 말았다. 장례식을 치르고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슬픔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그녀는 9년 전에 남편 앞으로 가입했던 보험이 생각났다. 장롱에서 보험증권을 꺼내어 읽어보니까 교통사고로 사망하면 1억 원을 지급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그녀는 교통사고사실확인원과 사망진단서를 보험회사에 제출하고 사망보험금을 청구하였다. 보험금 청구서류를 접수한 보험회사는 직원을 시켜 사고내용을 철저히 조사하였다. 조사담당 직원이 그녀를 찾아와 물었다.

“여기 청약서에 기재된 자필서명을 보니까 계약자와 피보험자의 자필서명 필체가 동일한 것 같은데 어느 분의 필적이죠?”

“아…, 그거요?”

“9년 전 설계사가 저의 회사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가입한 건데 아마 제가 했을 거예요.”

“안 그래도 그때 제가 남편에게 서명을 받아야 하느냐고 설계사에게 물어 보았는데, 설계사는 부부니까 아무 문제없다고 말해주었어요. 그래서 제가 한 거예요.”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직원은 두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갔다. 며칠 후 보험회사에서 우편물 하나가 날라 왔다. 우편물을 뜯어 본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사망보험인데 계약을 체결할 때 피보험자가 청약서에 자필서명을 하지 않아 계약이 무효이므로 사망보험금을 1원도 지급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황당하여 보험회사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항의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때마다 보험회사 직원은 보험계약이 무효라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그녀는 부인이 남편 서명을 대신 하여도 괜찮다고 말했던 설계사를 찾아서 따지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았지만 보험회사를 그만 둔 지 이미 오래 되었고, 9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면서 설계사의 연락처도 온데간데없었다.

그녀는 속 타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필자가 운영하는 보험 분쟁 및 보험소송 무료상담 카페를 알게 되었고, 상담을 받고자 필자의 사무실을 직접 찾아 왔다. 필자는 부인이 남편의 서명을 대신 하게 된 경위를 물어보았다. 설계사가 아무 문제없다고 말하여 자신이 대신 서명했다는 것이다. 사망보험금을 탈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 한 가지 방법이란 설계사가 남편의 서명을 부인이 대신 하여도 괜찮다고 말한 사실을 입증하여 보험회사를 상대로 보험업법 제102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는 거였다. 보험업법 제102조 제1항이란 보험회사는 그 임원, 직원, 설계사 또는 보험대리점이 보험모집을 함에 있어서 계약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는 규정이다.

 

필자는 그녀에게 물었다.

“계약을 체결할 때 설계사가 남편의 서명을 부인이 대신 하여도 괜찮다고 말했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하실 수 있으세요?”

그녀의 얼굴은 일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9년 전의 일을 이제 와서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어요? 그때 설계사의 말을 녹음해둔 것도 아니고….”

“그걸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다 시든 나팔꽃이었다. 소파에 앉아서 창가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십여 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보험금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는지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가벼운 묵례를 하고는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순간 필자는 그녀를 불렀다.

“잠깐, 사모님.”

문을 열고 나가려던 그녀가 멈칫 서더니 뒤를 바라보았다.

“네?”

그녀의 두 눈동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갈구하고 있었다.

“9년 전 보험계약을 체결한 장소가 사모님이 근무하시던 회사의 사무실이라고 하셨죠?”

“네.”

“당시 계약 체결장소에 사모님과 설계사 두 분밖에 안 계셨나요? 다른 분은 없으셨나요?”

“동료 여직원 한 분이 같이 있었어요. 그 분도 저랑 똑같이 남편의 종신보험을 한 건 가입했는데, 저처럼 남편의 사인을 그 분이 대신 했어요.”

“그렇다면 그 분도 설계사가 한 말을 같이 들었겠네요?”

“부인이 남편의 사인을 대신 하여도 문제없다는 설계사의 말을 말입니다.”

“그럼요. 당연히 같이 들었죠.”

순간 필자의 뇌리에 서광이 비쳤다.

“사모님. 이리 와 보세요.”

“그 동료라는 분, 지금 연락되세요?”

“그럼요. 지금도 저랑 같이 근무하고 있는걸요.”

“그럼 됐습니다. 사모님.”

“약간 희망을 가지셔도 되겠습니다.”

“네? 그게 참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생기가 돌고, 더 이상 시든 나팔꽃이 아니었다.

“선생님, 꼭 좀 부탁드립니다. 보험금을 탈 수 있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필자는 그녀에게 소송절차 및 어떻게 보험금을 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설계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하여 계약이 무효가 됨으로써 계약자인 사모님은 사망보험금 1억 원을 타지 못해 1억 원의 손해를 입었습니다. 따라서 사모님은 S생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후 설계사가 남편의 서명을 부인이 대신 하여도 괜찮다고 말하였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S생명으로부터 사망보험금 상당의 손해액 1억 원을 배상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입증 방법은 회사의 동료 여직원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겁니다. 사모님은 동료 여직원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해주고 증인 좀 서주라고 미리 부탁해 놓으세요.”

 

“그 분도 저처럼 설계사의 말을 듣고, 남편의 사인을 그 분이 대신 했기 때문에 증인을 부탁하면 얼마든지 들어줄 거예요. 제가 말해볼게요”

우리는 며칠 후 S생명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설계사는 보험전문가로서 타인의 사망보험계약에서 타인인 피보험자가 서면동의를 하지 않으면 계약은 무효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러한 내용을 계약자에게 상세히 설명해주고 피보험자의 서면동의를 받아 유효한 계약을 체결해야 설명의무 및 주의의무가 있음을 피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계사는 계약자가 피보험자의 서명을 대신하도록 권유하였고, 그로 인하여 계약이 무효로 되어 계약자가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손해를 입었다면, 보험회사는 보험업법 제102조 1항 규정에 의하여 설계사가 보험모집을 하면서 계약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관련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1. 11. 9. 선고 2001다55499 판결)도 제출하였다. 우리는 그녀의 동료직원을 증인으로 신청하였고, 동료직원은 증인신문기일에 법정에 출석하여 선서를 한 후 자신이 설계사로부터 설명들은 바를 사실대로 진술하였다. 소송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우리 측 승소였다. 그녀가 입은 손해는 사망보험금 1억 원이었으나 재판부는 피고에게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하였다. 2,000만원이 깎인 이유는 설계사 잘못도 있지만, 계약자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고 설계사가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한 과실을 20%로 보았기 때문이다.

 

위 사례는 남의 일이 아니다. 당신이 소지하고 있는 보험계약도 위 사례의 경우처럼 무효일 수 있다.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서로 다른 사망보험인 경우 계약을 체결할 때 피보험자의 서명을 누가 하였는지 지금 당장 확인해보기 바란다. 보험을 가입하는 목적은 보험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보험금을 지급 받기 위해서다. 어느 누가 소중한 돈을 수십 년 동안 보험회사에게 가져다 바치면서 무효인 보험계약을 체결하겠는가. 다만, 보험을 잘 모르는 대다수 일반 계약자들은 타인의 사망보험계약에서 타인의 서면동의를 받지 않으면 계약이 무효가 된다는 것을 잘 모른다. 때문에 보험전문가라 할 수 있는 설계사가 계약이 무효가 되지 않도록 주의의무를 다하여야 하는 것이다.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남편의 서명을 부인이 대신 하여도 괜찮다고 말하고 나서,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회사는 계약이 무효이므로 보험금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도둑놈 집단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도 설계사의 잘못으로 계약이 무효가 되어 보험금을 수령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보험회사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 바란다. 다만, 조건이 있다. 설계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입증이란 계약자가 피보험자의 서명을 대신 하여도 괜찮다고 말한 설계사의 말을 녹음해 놓은 것, 설계사가 자신이 했던 말을 자필로 기재해준 자필확인서, 계약을 체결할 때 설계사의 설명을 같이 들었던 증인의 진술 등을 말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계약이 무효가 되어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한 날로부터 3년이 경과되지 않았어야 된다. 민법상 불법행위 및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는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이기 때문이다. 계약이 무효이어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보험회사의 통지를 받은 날이 손해를 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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