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 정 모씨는 30대 중반의 여자다. 그녀는 1년 6개월 전 H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에 보험을 한건 가입했는데 최근에 암 진단을 받고 암 진단 보험금을 청구했다. H화재는 정 모씨가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체결 1년 전에 훼로바라는 철분제를 4개월 정도 복용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고지의무를 위반하였고, 보험계약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2년이 경과하지 않은 계약이므로, 보험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해왔다. 다만, 불고지사항인 빈혈약 복용 사실은 암 진단과 인과관계가 없으므로 암 진단 보험금은 지급하고 보험계약은 해지한다는 통보이었다. 며칠 후 H화재는 보험계약을 해지하고 해약환급금을 그녀의 예금통장으로 입금하였다.
계약자이면서 피보험자인 정 모씨가 계약해지에 대하여 H화재에 항의하자, H화재는 즉각 법원에 채무 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으로부터 소장 부본을 송달 받은 그녀는 너무도 황당하였고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여 상담을 받고자 필자의 사무실을 찾아 왔다. 필자가 판단할 때 빈혈은 여자들에게 흔한 질병이고, 훼로바는 단순 철분보충제일 뿐이며, 청약서 질문표에서 묻고 있는 10대 질병에 속하는 중대질병도 아니고, 설사 그녀가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훼로바 복용사실을 고지했다 할지라도 H화재는 보험계약을 인수하였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하였다.
고지의무 위반이 되려면 세 가지 요건이 전부 구비되어야 한다. 첫째, 불고지 또는 부실 고지한 사항이 있어야 하고, 둘째, 그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가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어야 하고, 셋째, 불고지 또는 부실 고지한 사항이 중요한 사항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요건이 전부 구비되지 아니하면 고지의무 위반이 아니어서, 계약 체결일로부터 2년이 경과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정 모씨의 경우 철분제인 훼로바를 4개월 동안 복용했던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므로 불고지 사항은 존재하나 훼로바 복용사실은 중요한 사항이라고 볼 수 없고, 불고지의 원인이 그녀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단순한 부주위로 인하여 훼로바 복용사실을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는 상담을 마친 후 소송비용을 절약하고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서면작성 및 제출 대행만 의뢰하였다. 서면작성 및 제출 대행이란 소장, 준비서면, 증거신청서 등 서면만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해주는 것을 말한다. 변호사를 선임한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변론기일에 변호사가 법정에 출석하는 대신 의뢰인 본인이 직접 법정에 출석하여 변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민사소송은 서면으로 공격, 방어를 한다. 승소 여부는 주장 사실을 얼마나 확실하게 입증하느냐에 달려있다. 변론기일에 의뢰인이 법정에서 하는 일이라곤 판사가 묻는 사항에 대하여 사실대로만 답변하면 된다. 그녀는 이렇게 하여 1심에서 승소하였다. 보험회사의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가 기각된 것이다. H화재는 1심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그녀가 승소하였다. H화재는 상고하지 않았고, 재판은 확정되었다. 결국 H화재는 해지된 그녀의 보험계약을 다시 유효한 계약으로 원상복귀 시켜주었으며, 계약 해지 이후에 발생한 암 입원비도 전부 지급해야만 했다.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보험계약 해지 중에는 계약자가 보험회사에게 알려야 할 중요한 사항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로 알리지 않아 고지의무 위반이 확실하여 정당한 계약해지도 있지만 정 모씨의 경우처럼 부당한 해지도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험회사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면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발품, 손품을 좀 팔아서 보험전문가와 상담해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한 보험계약 해지 및 보험금 불지급 중 필자의 기억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사건이 하나 있다.
부산에 살고 있는 30대 초반 남자의 이야기다. 어느 날 그로부터 상담 전화가 걸려왔다. 위암 진단을 받았는데 L생명이 암 진단 보험금 8,000만 원도 안 주고 보험계약도 해지해 버렸단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화가 턱 끝까지 찬 그의 목소리였다. 필자는 흥분하지 말고 자초지종을 차분히 이야기 해보라고 하였다. 그는 제법 커다란 중국식당에서 주방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월급도 꽤 많았다. 암보험은 L생명에 13개월 전에 가입하였다. 그런데 몇 달 전 결혼까지 약속하고 사귀던 여자 친구가 변심하고 만나주지 않자 그는 매일같이 술로 살아 왔다. 한 달 전쯤 대변을 보았는데 변의 색깔이 아주 까맣고 가느다랗더란다. 놀란 그는 집에서 가까이 있는 M병원을 찾아가 정밀검사를 실시하였다. 검사 결과는 위암이었다.
그는 암 진단서를 교부받아 L생명에 제출하고 암 진단 보험금을 청구하였다. 1주일 뒤 그는 사고조사 담당 직원으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보험계약을 체결하기 1년 전에 M병원에서 이미 암 진단을 받았으면서도 이를 보험회사에 알리지 않고 계약을 체결하였으므로 고지의무를 위반한 것이어서 보험계약은 해지할 것이고 암 진단 보험금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항의했지만 보험회사 직원은 막무가내였다. 보험회사 직원이 사고조사차 M병원을 찾아가서 그의 의무기록을 열람해보았는데, 보험을 가입하기 몇 달 전에 이미 위암으로 진단받은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단다. 그러면서 L생명 직원은 말하였다.
“보험계약 체결 전에 이미 암 진단을 받고도 이를 숨기고 보험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사기행위입니다.”
“그러나 아직 보험금을 받아 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기 미수라고 할 수 있죠.”
“보험회사가 선생님을 사기 미수로 경찰서에 고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아세요.”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는 보험회사 직원과 통화를 마치자마자 M병원으로 달려가 자신의 과거 의무기록을 열람해보았다. L생명 직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보험을 가입하기 몇 달 전에 그는 속이 자꾸 쓰려서 위 내시경 검사를 한번 받아 볼 목적으로 M병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받은 위 내시경 검사의 결과는 위암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담당 의사를 찾아가 따져 물었다.
“내시경 검사결과가 위암으로 나왔으면 그 즉시 환자에게 보고를 해주어야지 지금까지 왜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담당 의사는 병리 전문의로부터 검사결과를 건네받았는데,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주어야지 하고 생각했다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깜박 잊어버리고 연락을 못했던 것 같다고 말하더란다. 그러면서 그는 이럴 때에도 고지의무 위반에 속하느냐고 필자에게 물었다.
필자는 당장 M병원의 담당 의사로부터 자필확인서부터 받아 놓으라고 말해주었다. 의사의 자필확인서에는 위 내시경 검사결과 위암으로 의심된다는 검사결과지를 병리과 전문의에게 건네받고도 현재까지 환자에게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 있다고 기재하라고 말해주었다. 다음날 아침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담당의사로부터 자필확인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말해주었다.
“이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L생명으로부터 암 진단보험금도 탈 수 있고, M병원을 상대로 위자료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합니다.”
그는 말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암 진단 보험금과 위자료 모두 꼭 좀 받아 주세요.”
필자는 L생명 본점 주소지 관할인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접수하였다. 보험 증권에 기재된 암 진단 보험금은 8,000만 원이었다. 소장을 법원에 제출한 후 L생명으로부터 답변서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L생명 본점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보험금 8,000만 원을 내일 통장으로 입금해줄 테니까 소 취하해 주고, 예금통장 계좌번호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L생명이 그렇게 나올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필자는 소장 청구원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상법 제651조의 고지의무 위반에 속하려면 첫째,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 사항이 있어야 하고, 둘째, 그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가 계약자, 피보험자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것이어야 하며, 불고지 또는 부실고지 사항이 중요한 사항이어야 하는데, 이 사건 암 진단사실은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고, 불고지한 것은 사실이나, 그가 위암 진단 사실을 의사로부터 설명 듣지 못하여 그도 위암 진단 사실을 모르고 가입하였기 때문에 계약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불고지가 아니어서 고지의무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면서 담당 의사가 써 준 자필확인서를 증거로 첨부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사항을 고의로 알리지 않은 것이 고지의무 위반이지, 내가 모르고 있는 사항을 알리지 않은 것은 고지의무 위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 사건은 계약자가 암 진단 사실을 알고도 보험회사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지의무 위반이 아니어서 L생명이 법정에서 다투어봤자 보험금 8,000만원 지급은 물론 지연이자와 우리 측 소송비용까지 떠안을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스스로 백기를 든 것이다. 다음날 오전 L생명은 보험금 8,000만원 전액을 그의 통장으로 입금해주었고, 그날로 우리는 법원에 소취하서를 제출하였다. 사건을 수임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깨끗이 해결된 사건이어서 필자의 뇌리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사건이다. 암 진단 보험금을 지급받은 후 우리는 곧이어 부산에 소재하고 있는 M병원을 상대로 의료과실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위자료 2,300만원을 받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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