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좋은보험 나쁜보험 이상한보험"/보험금불지급

피보험자가 보험청약서에 자필서명을 하지 않아 보험계약이 무효이므로 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

by 변운연 2021. 11. 10.

상법 제731조 제1항은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는 보험계약 체결시에 그 타인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이란,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보험계약으로서 피보험자가 사망하였을 때 사망보험금이 지급되는 보험을 말한다. 상법의 이 규정에 따라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보험계약에서 피보험자가 청약서에 자필서명을 하지 않았다면 그 보험계약은 무효가 된다. 하지만,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를지라도 피보험자가 사망하였을 때 사망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보험은 피보험자가 자필서명을 하지 않더라도 무효가 아니다. 상법에 이 규정을 둔 취지는 타인 몰래 보험을 가입한 후 사망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타인을 살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도덕적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타인이란 가족이 아닌 제3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배우자도 타인이고 부모도 타인에 속한다. 형제자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보험계약자는 부인이고 피보험자는 남편일 경우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남편이 청약서에 자필서명을 하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 다만, 피보험자가 20세 미만의 자녀일 때는 보험계약자인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녀 대신 자필 서명하여도 상관없다. 20세 이상의 자녀는 자녀가 직접 자필서명을 하여야 한다.

 

무효인 보험계약은 보험계약 체결일로 소급하여 무효이므로 보험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보험금을 한 푼도 지급받을 수 없다.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보험계약에서 피보험자가 자필서명을 하지 않아 무효인 보험계약은 추후에 피보험자가 자필서명을 보완했다 할지라도 무효이다. 자필서명을 보완했기 때문에 유효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보험실무에서는 이런 무효 계약들이 종종 체결되어진다.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 체결 장소에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같이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피보험자가 계약 체결 장소에 없는 경우이다. 이때 보험설계사가 자필서명의 중요성을 설명해주고, 좀 번거롭더라도 청약서를 두고 갈 테니까 피보험자가 자필로 서명한 다음 연락을 주면 다시 오겠다고 말하면 되는데, 다시 방문하기 귀찮으니까 대충 해도 된다고 말하면서 발생된다.

“부부니까 괜찮다.”

“부인이 남편의 서명을 대신 해도 아무런 문제없다.”

하지만 다 거짓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는 절대로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말기 바란다.

보험계약자인 부인이 남편을 피보험자로 하여 보험계약 한건을 체결하고 싶은데, 남편에게 말해봐야 보험인식이 안 좋은 남편이 팔팔 뛸 것은 뻔하고, 보험청약이 무산되면 보험설계사는 모집수당을 받을 수 없으니까 보험설계사가 돈 벌 욕심에 부인이 대신 서명해도 괜찮다고 거짓말을 하여 무효계약이 체결되기도 한다.

 

보험계약자가 자신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 즉,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동일한 계약은 보험계약자가 보험설계사에게 구두로만 청약 의사를 밝히고,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의 자필서명은 보험설계사가 대신 하여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렇다면 타인의 사망보험에서 피보험자가 자필서명을 하지 않아 보험계약이 무효가 됨으로서 보험금을 타지 못한 때, 보험계약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다음 사례를 잘 읽어보기 바란다.

 

의뢰인 박 모씨는 경기도 안산에 사는 50대 중반의 여자이다. 그녀는 9년 전에 보험계약자는 자신 명의로, 피보험자는 남편 명의로 하여 종신보험을 한 건 체결하였다. 9년 전 어느 날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S생명보험 설계사 두 명이 그녀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보험인식이 너무 안 좋아 남편 앞으로 되어 있는 보험이 한 건도 없었다. 평소 남편의 보험을 한 건 넣고 싶었는데 때마침 보험설계사들이 방문하여 그녀는 보험설계사에게 물었다.

“저는 남편 앞으로 보험을 한 건 넣고 싶은데 우리 남편은 보험이라면 질색하거든요.”

“맞아요. 대부분의 남편들은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여 보험을 가입하면 재수가 없다거나 기분이 찝찝하다며 반대를 많이 해요.”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남편 몰래 가입하면 되요. 사모님이 남편의 서명을 대신 해도 상관없으니까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부부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이렇게 하여 그녀는 남편의 종신보험계약 한 건을 체결하게 되었다. 그녀가 보험계약을 체결하자 옆 좌석에 있던 그녀의 동료 여직원 한 명도 계약자를 자신으로 하고 피보험자를 남편으로 하여 같은 종신보험을 한 건 덩달아 체결하였다. 부인이 남편의 자필서명을 대신 하여도 괜찮다는 보험설계사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모두 청약서에 남편 대신 자필서명을 하였다.

 

9년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던 그녀의 남편이 지난 달 교통사고를 당하여 머리를 크게 다쳤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안산병원 중환자실에서 6일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었다. 갑자기 9년 전에 남편 앞으로 가입했던 보험이 생각났다. 장롱에서 보험증권을 꺼내 살펴보니까 교통사고로 사망하면 1억 원을 지급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그녀는 사망진단서를 보험회사에 제출하고 사망보험금을 청구하였다. 보험금 청구서류를 접수한 보험회사는 담당 직원을 시켜 사고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나온 보험회사 직원이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청약서의 자필서명을 보니까 계약자와 피보험자의 자필서명이 동일한 사람의 필적 같은데 어느 분의 필적이죠?”

“아...그게 말이죠...”

“9년 전에 보험설계사가 저의 직장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가입한 것인데, 아마도 제가 했을 거예요.”

“안 그래도 남편의 자필서명을 내가 대신 해도 괜찮으냐고 물어 보았는데, 설계사는 부부니까 괜찮다고 했어요.”

“아,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보험회사 직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돌아갔다. 며칠 후 보험회사에서 우편물 하나가 날라 왔다. 우편물을 뜯어 본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사망보험계약인데 계약을 체결할 때 피보험자가 청약서에 자필서명을 하지 않아 계약이 무효이어서 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보험회사에 전화하여 항의를 수차례 해 보았지만 필요 없었다. 그때마다 보험회사 직원은 보험계약이 무효라 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부인이 남편의 서명을 대신 하여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던 보험설계사를 찾아 책임을 물으려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보았지만 보험회사를 그만 둔 지 이미 오래고, 9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면서 보험설계사의 연락처도 온데간데없었다.

 

그녀는 인터넷을 뒤지다가 필자가 운영하는 보험 분쟁 상담카페를 알게 되었고, 보험금에 관하여 상담을 하고자 필자의 사무실을 찾아 왔다. 사망보험금을 탈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 한 가지란 보험설계사가 남편의 서명을 부인이 대신 해도 괜찮다고 말한 사실을 입증만 할 수 있다면 보험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한 후 보험업법 제102조 제1항에 따른 배상책임을 묻는 거였다. 보험업법 제102조 제1항이란 보험회사는 그 임원, 직원, 보험설계사 또는 보험대리점이 보험모집을 함에 있어서 보험계약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는 규정을 말한다.

 

필자는 그녀에게 물었다.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거짓말 하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으세요?”

그녀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9년이나 지났는데 그걸 이제 와서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어요? 당시에 녹음을 해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시든 나팔꽃처럼 그녀는 풀이 죽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었다. 잠시 후 그녀는 포기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담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러고는 출입문을 향하여 걸어갔다. 그 순간 필자가 그녀를 불렀다.

“잠깐만! 사모님.”

문을 열고 나가려던 그녀는 필자가 부르는 소리에 멈칫 서서 뒤를 바라보았다.

“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는 무언가 희망적인 메시지를 갈구하고 있었다.

“9년 전 보험계약을 체결한 장소가 사모님의 직장 사무실이라고 하셨죠?”

“네.”

“그 당시 계약을 체결할 때 옆에 보험설계사와 사모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없었나요?”

“동료 직원 한 분이 옆에 같이 있었어요. 그 분도 나랑 똑같이 남편의 종신보험을 가입했는데, 저처럼 남편의 싸인을 그 분이 대신 했거든요.”

“그렇다면 그 분도 보험설계사가 한 말을 같이 들었겠네요?”

“부부니까 남편의 싸인을 부인이 대신해도 괜찮다는 보험설계사의 말을 말입니다.”

“그럼요. 당연히 같이 들었죠.”

“사모님. 이리 다시 오십시오.”

상담 소파로 돌아와 앉은 그녀와 상담은 계속 이어졌다.

“그 동료 분은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내나요?”

“그럼요. 지금도 저랑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걸요.”

“그럼! 됐습니다!”

“사모님. 희망을 가지셔도 되겠습니다. 보험금 탈 수 있습니다!”

“네에? 그게 참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녀의 눈동자는 생기에 가득 찼고, 더 이상 시든 나팔꽃이 아니었다.

“선생님, 제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꼭 좀 타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필자는 그녀에게 소송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보험설계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하여 계약이 무효가 됨으로써 사망보험금 1억 원을 타지 못해 1억 원의 손해를 입은 것이므로 S생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후 보험설계사가 거짓말한 사실만 입증하면 S생명으로부터 손해액 1억 원을 배상받으실 수 있는데, 보험설계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그녀의 동료 직원을 증인으로 신청하자고 말하였다. 조금 전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은 생기로 가득 찼다.

“그 분도 보험설계사의 말을 듣고, 저처럼 남편의 싸인을 그 분이 대신 했기 때문에 증인을 부탁하면 흔쾌히 들어줄 거예요.”

 

우리는 며칠 후 S생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우리는 재판 내내 보험회사의 보험설계사는 보험전문가로서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는 피보험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하는 사실을 보험계약자에게 설명하고 그 서면동의를 받아 보험계약을 체결하도록 조치를 취할 주의의무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계약 체결시 위 사실을 보험계약자에게 설명하여 주지 않아 보험계약자로 하여금 피보험자 동의 란에 피보험자의 서명을 대신하게 하여, 보험계약이 피보험자의 서면동의를 얻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무효가 되어 보험계약자가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손해를 입게 되었다면, 보험회사는 보험사업자로서 보험업법 제102조 제1항에 의하여 보험설계사가 보험모집을 하면서 보험계약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1. 11. 9. 선고 2001다55499 판결)도 같이 제출하였다.

 

우리는 그녀의 동료 직원을 증인으로 신청하였고, 동료 직원은 증인신문기일이 있는 날 법정에 출석하여 선서한 후 실제로 자신이 들은 바를 진술하였다. 소송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손해액 1억 원 중 8,000만원을 배상받았다. 2,000만원이 깎인 것은 보험설계사의 잘못 때문에 빚어진 일이지만, 보험계약자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고 보험설계사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한 과실이 20%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보험을 가입하는 목적은 보험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보험금을 지급 받기 위해서다. 어느 누가 아까운 내 돈 버려가며 무효인 보험계약을 체결하겠는가. 보험을 잘 모르는 대다수 일반 계약자들은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타인인 피보험자가 자필서명을 하지 않으면 계약이 무효가 된다는 법률 규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때문에 보험전문가라 할 수 있는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의 무효에 대하여 보험계약자에게 자세히 설명해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만약 독자들 중에도 앞에서 본 사례처럼 보험설계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하여 보험계약이 무효가 되어 보험금을 수령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필자에게 상담을 받아보기 바란다. 다만, 법적대응을 하려면 보험설계사의 고의 또는 중과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만 한다. 보험계약자가 피보험자의 서명을 대신 해도 괜찮다고 한 보험설계사의 말을 몰래 녹음한 것도 되고, 보험설계사의 말을 보험설계사의 자필로 받아 놓은 문서도 가능하며, 계약을 체결할 때 보험설계사의 말을 같이 들었던 사람이 있어도 된다. 그리고 하나 더, 민법상 불법행위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3년이 경과하지 않았어야 한다.


보험소송 전문 법무법인 행복

사무실 위치: 서울 지하철 2호선, 3호선 교대역 8번출구로 나와서 50미터 직진 KETI빌딩 10층

상담전화: 010-7496-6717, 02-523-6717

상담자: 손해사정사 변운연, 변호사 김국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