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보험법
7. 보험법
넓은 의미의 보험법이란 공보험과 사보험을 포함하여 보험계약에 관한 법률뿐만 아니라 보험사업의 주체, 운영, 감독에 관한 법규 등 보험관련법 일체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좁은 의미의 보험법을 이야기할 때는 사보험 중 영리보험에 관한 ‘보험계약법’만을 가리키며 이는 곧 상법 제4편 ‘보험’편을 말합니다.
영리적인 보험거래는 상행위이므로(상법 제46조 제17호) 영리보험에 관한 보험계약법은 상행위법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보험사업의 공공성, 사회성, 기술성에 의하여 일반 상행위법과는 상당히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험법의 가장 큰 특색은 ‘공공성’과 ‘사회성’입니다. 영리보험은 보험회사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영리사업인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산업사회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우리 주변에는 곳곳에 위험이 산재해 있고, 위험으로 인한 피해액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가계나 기업들이 보험 제도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안정된 경제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영리보험은 상당한 정도의 공공성과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보험 가입자 수를 보더라도 전 국민의 성인 대다수가 가입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보험업법은 보험사업의 운영에 대하여 국가가 감독을 할 뿐만 아니라 각종 인허가 제도를 채택하여 관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험법의 두 번째 특성은 ‘기술성’입니다. 보험은 일정기간 내의 사고발생 개연율을 측정하고 그 확률에 따라 지급하여야 할 보험금의 총액과 사업비 그리고 징수하여야 할 보험료의 총액이 균형을 이루도록 운영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험법은 다른 거래법과는 다른 기술적 특색을 갖고 있습니다.
세 번째 특성은 ‘단체성’입니다. 보험계약은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 사이의 채권계약에 불과하지만, 보험제도는 동종의 위험에 처한 다수의 경제주체들이 보험단체(위험단체)를 구성하여 보험료의 총액과 보험금의 총액이 균형을 이루게 하는 제도로서 단체성을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체성은 상호보험과는 달리 영리보험에 있어서는 제도적 기초로서 존재할 뿐이며 법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험계약의 해석, 운용에 있어서는 보험계약의 계약법적 특성만 중시할 것이 아니라 보험의 단체성도 고려하여 보험계약자와 보험단체의 이익을 적절히 조화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네 번째 보험법은 ‘강행 법규성’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보험제도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공성과 사회성이 강하기 때문에, 보험사업에 대하여는 허가와 등록규정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상법에서도 보험계약에 관하여 강행법적 규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상법 제663조 본문에서는 “이 편(제4편 보험편)의 규정은 당사자간의 특약으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불이익으로 변경하지 못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보험계약자 보호를 위한 상대적 강행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법 제4편 ‘보험’편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에 비해 보험계약자 등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보험약관이나 개별약정은 모두 무효가 됩니다.
상법 제663조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은 보험지식이나 계약교섭력이 약한 보험계약자 개인을 보호하는 데 그 입법취지가 있는 것이므로 가계보험에 국한하여 적용됩니다. 기업보험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때문에 상법 제663조 단서는 “그러나 재보험 및 해상보험 기타 이와 유사한 보험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기타 이와 유사한 보험’에 해당되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해상보험, 기업보험, 항공보험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형식상 해상보험, 기업보험 등과 유사한 외양을 갖고 있다고 하여 무조건 상법 제663조 본문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험계약의 유형과 취지를 종합적으로 고려, 판단하여 보험계약자의 이익보호를 위한 후견적 배려가 필요한 것인가 여부를 가려서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만 위 단서를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마지막으로 보험법의 특성 중 하나는 ‘선의성(윤리성)’입니다. 보험계약에는 도덕적 위험(Moral hazard)이 늘 상존합니다. 보험계약은 장래의 불확실한 사고발생 여부에 따라서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급의무가 달려있는 만큼 사행계약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보험사고시 지급되는 보험금은 보험계약자가 불입하는 보험료에 비해 거액인 관계로 보험계약자 등이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취득할 목적으로 보험을 악용할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높은 사고위험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보험가입자가 위험을 역선택(Adverse selection)한 후 고의로 보험사고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도덕적 위험의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하나, 그밖에도 고액의 보험가입금액을 약정하거나 손해액을 부풀리는 등의 방법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도덕적 위험의 증가는 피보험이익이 인정되지 않아 중복보험이나 초과보험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생명보험에서 한층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도덕적 위험은 단순히 보험회사에 불이익을 부담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험료의 인상 등을 초래하여 다수의 선의의 보험가입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폐해를 낳을 뿐 아니라 확률의 측정을 불가능하게 하여 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게 되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법제도의 정비와 법이론의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상법의 제4편 ‘보험’편에서는 이러한 도덕적 위험을 없애고, 선의성 유지를 위하여 여러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중요한 장치로는 ①보험통칙에서의, 보험계약자 등의 고지의무(상법 제651조), 위험변경, 증가의 통지의무(상법 제652조), 고의, 중과실 사고 면책(상법 제659조), 보험사고발생 시의 보험계약자의 통지의무(상법 제 657조), ②손해보험에서의, 피보험이익이 없는 경우 보험계약의 무효와 초과보험 시 보험금 감액 지급(상법 제669조 제1항), 중복보험이나 초과보험시 비례보상(상법 제672조),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의 손해방지 및 경감의무(상법 제680조), ③인보험에서의, 타인의 사망보험 시 피보험자의 서면동의(상법 제731조), 15세 미만자와 심신상실자 그리고 심신박약자에 대한 보험계약의 금지(상법 제732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제도적 장치로도 보험계약에 내재하는 도덕적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습니다. 보험회사는 보험계약 체결이 보험금 부정취득 등의 도덕적 위험을 수반하여 체결된 것이므로 사회질서 위반 또는 신의칙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무효라고 주장하여 보험금 지급을 면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다49064 판결 참조)
과다한 보험계약, 즉 보험계약 건수가 이례적으로 많고 보험금액 역시 상식에 비추어 지나치게 과다한 보험계약과 관련하여 사회질서 위반 여부가 논의되곤 하는데, 이러한 경우 보험계약 건수가 많고 보험금액이 지나치게 과다하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보험계약의 체결 경위, 소득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 보험계약의 체결 시기와 경과 기간, 보험사고 발생 경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사회질서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대법원 2001. 11. 27. 선고 99다33311 판결 참조)
보험계약에 대하여는 상법 제4편 ‘보험’편 규정이 제일 먼저 적용되고, 보험계약도 상행위이므로 상법의 ‘총칙’ 및 ‘상행위’편이 적용될 뿐 아니라 계약의 성립 등 법률행위 일반에 적용되는 민법의 일반원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또한 보험계약에는 보험업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 예금자보호법 등의 특별법이 적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