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험
1. 보험
보험이란 무엇일까요? 너 나 할 것 없이 보험을 여러 건씩 가입하고 살지만 정작 보험이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황해 합니다. 보험의 정의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보험이란, 동일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위험단체(보험계약자 집단)를 구성하고 통계적 기초에 의하여 산출된 금액(보험료)을 내어 기금을 마련한 뒤, 우연한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재산적 급여(보험금)를 함으로써 가계나 기업의 경제적 불안을 없애거나 덜고자 하는 경제적 제도를 말합니다.
통계적 기초란, 대수의 법칙을 말합니다. 보험제도는 이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에 기초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수의 법칙이란,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우연한 사고 발생의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지만 동종위험에 처해 있는 다수의 집단을 놓고 관찰해보면 사고의 발생확률이 어느 정도 일정하게 안정된 수치를 보이게 되는데, 관찰 집단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수치는 더욱 안정되는 현상을 보인다는 법칙입니다.
대수의 법칙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할 때 우리는 주사위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주사위를 열 번 던졌을 때 점 한 개의 면이 위를 향하여 나오는 경우가 몇 번이나 될까? 실제로 한 번 던져보세요. 어떤 사람은 열 번 중 대여섯 번 나올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한두 번밖에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재수가 없으면 한 번도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열 번 던졌을 때에는 점 한 개가 위를 향해 나올 확률은 매우 안정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10,000번을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점 한 개가 위를 향해 나오는 횟수가 10,000이라는 숫자의 1/6에 해당하는 1,666에 가까운 횟수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점 한 개가 위를 향해 나올 확률이 1/6인 것입니다. 안 믿겨진다면 독자들도 한 번씩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관찰 횟수를 많이 하거나 다수의 집단을 놓고 관찰해보면 그 발생확률은 어느 정도 안정성을 보입니다. 대수의 법칙에 의하여 위험집단의 사고발생률이 정해지면 위험집단을 운영하는 보험회사는 사고발생시 지급해야 할 보험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집단의 구성원으로부터 거두어야 할 금액을 산정하는데, 이렇게 산정된 구성원 개개인의 납입금을 ‘보험료’라고 부르고, 사고 발생시 구성원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돈을 ‘보험금’이라고 말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홍길동이라는 35세 남자 한 명이 올 1년 안에 사망할 확률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1년 안에 사망하면 100%요, 사망하지 않으면 0%입니다. 하지만 35세 남자 10,000명이라는 집단을 놓고 관찰해 보았더니 1년 안에 사망한 사람이 10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35세 남자가 1년 동안 사망할 확률은 0.0010%인 셈입니다. 이처럼 홍길동 한 명을 놓고는 사망 확률을 측정하기 힘들었지만, 10만명의 집단을 놓고 관찰함으로써 35세 남자의 사망 확률은 어느 정도 측정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확률은 집단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안정된다는 말입니다. 보험회사는 이 확률을 가지고 보험계약자가 내야 할 보험료 금액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사망자 한 명당 1천만원의 사망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면, 1년 안에 사망할 10명의 사망보험금으로 1억 원(1인당 1천만원×사망자 10명)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1억 원을 만들기 위해 10,000명이라는 남자들에게 1인당 얼마씩 걷으면 될까요? 1인당 10,000원씩 걷으면 됩니다. 10,000원은 1년치 보험료이므로 이를 월납으로 징수한다면 10,000원을 12개월로 나눈 금액 833원씩을 매월 징수하면 됩니다. 이런 이유에서 사망확률이 높아지면 보험료도 그만큼 비싸지는 것이고, 반대로 낮아지면 보험료도 그만큼 싸지는 것입니다.
주계약뿐만 아니라 특약의 보험료도 사고발생 확률에 따라 그 금액이 결정됩니다. 재해로 사망할 확률은 재해사망특약의 보험료를 결정짓고,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은 일반사망특약의 보험료를 결정짓습니다. 암 발생 확률은 암보장특약의 보험료를 결정짓고, 재해로 인하여 장해를 입을 확률은 재해장해특약의 보험료를 결정짓습니다.
자살사망 특약도 그 발생확률을 알면 보험료를 산출하여 특약으로 부가할 수도 있겠지만, 고의사고에 대하여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사회질서에 어긋나고 건전한 보험제도에 반하기 때문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법과 보험약관에는 고의사고는 면책(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함)이라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험은 평소 소액의 보험료를 납입하다가 우연한 사고를 당하면 고액의 보험금을 취득하게 된다는 점에서 도박이나 복권처럼 사행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도박과 복권은 우연한 사건의 발생으로 인하여 적극적인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반면, 보험은 우연한 사고에 의하여 입게 될 경제적 손실에 대처하고자 하는 경제적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도박, 복권이 보험과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도박이나 복권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손실을 보는 사람도 있고 이익을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금전의 장소적 이동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보험은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개인적인 입장과 사회적인 입장 모두 손실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다양한 위험과 불확실성 하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에 따라서 위험의 종류와 위험의 정도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산업이 발전할수록 예전에 없던 새로운 위험이 계속 생겨나기도 하고, 기존에 존재하던 위험이 감소 또는 소멸하기도 합니다.
필자도 평소 일상생활에서 늘 위험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위험을 느끼고 사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위험에 노출되기 시작합니다. 먼저 욕실에서는 전기면도기나 헤어드라이기 전원을 켜고 끄면서 늘 감전의 위험을 느낍니다. 2006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617명이 감전 사고를 당하여 68명이 사망하고 549명이 부상당하였습니다. 샤워를 하기 위해 비누에 손을 대는 순간 비누가 담고 있는 유해한 성분에 내 몸은 노출됩니다. 또한 세제로 세탁된 옷을 입을 때에는 세제 속에 들어 있는 표백제가 발암물질이 있어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옷을 입고 아침식사를 하기 위하여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갑니다. 늘 오르락내리락 하는 계단이지만 언제 어느 때 실족하여 부상을 당할지 몰라 늘 불안합니다.
아침식사 때 커피를 마실까 홍차를 마실까 망설입니다. 커피나 홍차에는 잘 알려진 발암물질인 카페인이 들어 있습니다. 차를 마실 때에는 비만과 심장병을 유발시키는 설탕을 항상 넣어서 먹는데, 먹기는 하지만 이 또한 늘 걱정이 됩니다. 식사 후 나는 경복궁 집에서부터 서초동 집무실까지 매일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합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동안 늘 대구지하철 화재발생 사건이 떠올라 불안하고, 지하철 역사 구내의 공기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라는데 피할 길이 없습니다. 내가 출퇴근 때 이용하는 지하철은 3호선인데 폐암을 유발하는 방사능물질인 ‘라돈(Rn)’의 대기 중 농도가 1~4호선 지하철 중에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기준치의 1.6배나 될 만큼 많이 검출되었답니다. 특히 경복궁역과 안국역의 겨울철 라돈 농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뉴스를 접한 뒤로는 더욱 불안을 느낍니다. 낮에 일할 때 입에 물고 사는 담배, 퇴근 후 갖는 잦은 술자리 때문에 나의 건강은 언제 어느 때 나빠질지 모릅니다. 주말에는 서울 근교 산행을 즐겨 하는데 가끔 실족 사고를 당하여 헬기에 실려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늘 추락사고의 위험을 느낍니다.
필자가 이처럼 다양한 위험을 느끼면서 살듯이 독자들도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사망합니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세계 최고령의 사망기록은 일본인으로서 120년을 살다가 1986년에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태어나면 120년 안에 죽는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다만, 사망시점만 각자 다를 뿐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자 75세, 여자 81세로 20년 전에 비해 12~14세나 증가하였습니다. 이 수치는 세계 최장수국인 일본에 비하여 아직도 3~4세 낮은 수준입니다. 한편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이 서울시민 5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시민의 20.5%가 재해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거나 신변의 위험을 느낀다고 답하였습니다. 재해를 직접 경험한 시민은 전체의 12%인데, 그 중 39%가 교통사고, 36%가 자연재해, 13%가 화재, 11%가 전기, 가스, 수도의 공급 중단 등을 경험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또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재해의 유형에 대하여는 가스폭발(17%), 교통사고(16%), 화재(12%), 건축구조물 붕괴(12%), 환경오염(10%) 등으로 응답해, 전통적인 자연재해보다는 기술적이고 인위적인 재해를 더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 전체의 안전도에 대해서는 무려 51.3%가 위험하다고 응답하였고, 그러나 25.6%가 재해 대비 물품을 아예 준비하고 있지 않고, 36.1%가 소화기 및 소화전 사용법을 모른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국민의 1/4이 거주하는 서울도 알고 보면 이렇게 위험한 곳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6년 사망자 및 사망원인’을 보면 2006년 한 해 동안 총 사망자수는 24만 3,934명으로 이는 하루 평균 668명이 사망하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3대 사망원인은 악성신생물(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으로 2006년 한해에만 총 11만 6,000명이 이로 인해 사망, 전체 사망자의 47.6%를 차지했습니다. 이 3대 질환은 1997년부터 한국인의 3대 사망원인이 되고 있으며, 전체 사망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42.9%에서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암으로 숨진 사람은 181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사망원인을 연령별로 보면 남자의 경우 20대는 운수사고(15.7명)가 가장 높았고, 30대는 자살(21.8명)이 가장 높았으며, 40대 이상은 암 사망률이 가장 높았습니다. 여자의 경우에는 20대는 자살(12.4%), 30대 이상은 암 사망이 가장 높았습니다.
또한 최근 들어 저출산과 평균수명 연장에 따라 노령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인구주택총조사 전수 집계 결과’를 살펴보면, 전체 인구 4,704만 명 중에서, 20세 미만 인구수는 1,208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25.7%를 차지하고 있고, 이는 5년 전의 1,333만 명(전체인구의 29%)보다 125만 명이 감소한 것으로서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면, 60세 이상 노인의 수는 625만 명으로 이는 전체인구의 13.3%로서 5년 전의 516만 명(전체인구의 11.2%)보다 109만 명이나 늘어난 수치입니다. 이처럼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치매에 걸리는 노인도 계속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정년퇴임 후 노후생활비 대책이 시급한 해결 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2007년 9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7년 치매노인은 39만 9,000명(치매 유병률 8.3%)으로 추정하고 있고, 2010년에는 46만 1,000명, 2020년에는 69만 3,0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후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의료비를 포함한 생활비 마련이 필수적이어서 현대를 살아가는 중년 세대들에게 가장 큰 위험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주위가 온통 위험더미 같지 않습니까? 필자가 위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너무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위험은 날로 증가되고 있으며, 새로운 위험들이 계속 탄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그 무언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필요(need)에 의하여 보험이란 것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위험이 있는 곳에 보험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위험이 없다면 보험도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위험이란 한마디로 사고발생의 개연성을 말합니다.
보험은 사고발생의 개연성에 대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종류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사고 발생 시 혼자의 힘으로 크나큰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동질의 위험을 느끼는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위험집단을 구성한 뒤, 집단의 구성원 각자는 통계적 기초에 의하여 산출된 소액의 보험료를 납입하여 커다란 기금을 마련해 놓고, 우연한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경제생활의 불안을 없애거나 덜고자 하는 경제적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보험입니다.
이처럼 보험은 우연한 사고를 대비하여 가입하는 것입니다. 고의적인 사고나 이미 발생한 사고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받고자 가입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